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문단 편집) === 전후: 소련의 대리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nstanty_Rokossowski_w_polskim_mundurze.jpg|width=500]] ▲ 폴란드군 원수 당시 사진.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인 [[폴란드 인민공화국]]이 되었는데, 폴란드 인민공화국은 제2공화국 출신이 주축이 된 기존 군부를 믿지 못했기 때문에 스탈린에게 로코솝스키를 폴란드에 귀국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스탈린도 폴란드 공산정권이 소련에 밀착되기를 원했으므로, 1949년 11월 로코솝스키는 스탈린의 명령으로 신생 폴란드 정부의 [[국방장관]]이자 폴란드 인민군 원수에 취임했고 뒤이어 각료회의 부의장 (부총리) 자리까지 차지했다. 로코솝스키는 말이 국방장관이지 사실상 스탈린의 사트라프, [[소련]]의 대리인이며 폴란드의 감시자가 된 것이다. 로코솝스키뿐만 아니라 [[소련군]]에 있던 여러 폴란드계 소련인들이 폴란드군에 들어와서 지휘관이나 [[부사관]]을 역임하였다. 이 수는 7천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폴란드군의 간부 상당수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던 제2공화국 출신이었기 때문에 군부를 공산당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수많은 폴란드군 장교-부사관이 전사 또는 [[카틴 학살|학살]]되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숙련된 간부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국방장관으로서 폴란드 인민군에 대한 기여는 명암이 갈린다. 일단 군의 수장으로서 공산체제와 맞지 않는 제2공화국 시절부터 복무해왔던 고참 폴란드군 장교들을 군에서 추방하고, 반소적인 장교는 숙청했지만 폴란드군의 재건에는 큰 역할을 했다. 국방장관으로서 폴란드 정부에 엄청난 예산을 요구했고, 소련의 눈치를 보던 폴란드 인민공화국 정치인들은 이를 소련의 요구로 해석해 경제에 부담이 되는데도 승인해서 거액의 국방비가 폴란드군에 배정되었다. 그리하여 2차 대전 시절에 기계화가 미진하여 기병에 의존하던 폴란드군은 빠른 속도로 소련식의 기계화보병으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폴란드군의 군복이나 경례법(두 손가락 경례) 등도 전통을 존중하여 소련식으로 바꾸지 않고 제2공화국 시절대로 유지하는 데 찬성했다.[* [[폴란드 제2공화국]]은 폴란드 인민공화국에 의해 흑역사로 간주되던 반동체제였다. 현재는 폴란드 인민공화국이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흑역사가 되었지만.] 런던에 있던 반공적인 [[폴란드 망명정부]]에서 일하던 고위 장성들이 마음을 바꿔 귀국하려고 하자, 이를 허용하고 공산체제 이전의 군 경력을 인정하여 연금을 받게 해 주기도 했다. 문제는 로코솝스키는 지나치게 러시아화되어 있어서 폴란드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러시아에서 살아 폴란드어가 무척 어눌해서[* [[폴란드어]]와 [[러시아어]]는 [[외국어]]치고는 슬라브어파로 꽤 가까운 편이라서 서로 60-70%는 통한다. 그런데도 로코솝스키는 폴란드를 떠날 때까지 공개 석상에서도 [[신동주|폴란드어로 연설하기 힘들어서 러시아어를 썼다]]고 한다. 이렇게 이 사람은 [[서재필|폴란드인이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의외로 국방장관으로서 공개석상에서는 본인은 폴란드인으로서 폴란드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연설했다고 한다.] 폴란드군 행사 때에도 러시아어로 연설했을 뿐만 아니라, 폴란드어 독해나 청해가 잘 안 되어서 자신에게 올리는 보고나 보고서는 모두 러시아어로 말하거나 작성하라고 명령했다. 폴란드 국민들은 [[폴란드 침공]], [[카틴 학살]]로 소련이나 러시아에게 크게 당했기 때문에, 소련군에서 커리어를 쌓아서 폴란드의 고위직이 된 그를 "스탈린의 총독"으로 생각하여 싫어하고 불신했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인들이 그를 좋게 볼 리 만무했다. 그리하여 로코솝스키 같은 "소련 앞잡이"들은 폴란드 민족주의자 입장에서는 불신 정도가 아니라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에 대한 암살 시도가 두 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로코솝스키는 "러시아에서는 나를 폴란드인이라고 했는데, 폴란드에서는 나를 러시아인이라고 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Ot, Cymbarewicz, ironia losu, w Rosji ja był Polakiem, a w Polsce Ruskim(이봐, 침바레비치, 운명의 아이러니야. 러시아에서 나는 폴란드인이었는데, 폴란드에서는 러시아인이라고)." 1956년에 폴란드를 떠나면서 이 말을 남겼다. 프란치셰크 침바레비치(Franciszek Cymbarewicz)는 로코솝스키처럼 소련군에서 복무하다가 폴란드 인민군으로 발령받은 케이스인데, 로코솝스키와 달리 그는 끝까지 폴란드에 남았고 2000년 5월 27일 바르샤바에서 사망했다.]며 나름 씁쓸한 감정을 나타냈다. 여기에 공산정부는 여러가지로 폴란드의 사회주의화를 강행하면서 지주-귀족 숙청, 전직 국내군[* 나치에 저항한 국내군 상당수가 역시 반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인사 숙청, 반소 게릴라 진압, 강제수용소 운용 등의 여러 억압책을 펼쳤는데, 이는 소련 출신인 로코솝스키의 지시로 간주되었고, 이 때문에 폴란드에서 로코솝스키는 소련의 대리인으로 여겨져 증오의 대상이자 국민 욕받이가 되었다.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자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에서는 반소 자유화 운동이 발생하였다. 공산정부는 [[비밀경찰]], [[고문]]과 강제 수용소를 동원해 소련에 반대하는 수많은 인사들을 잡아들였다. 1956년 [[포즈난]]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에는 '''1만 명의 병력과 300대의 [[전차]]를 동원'''해 군중에게 발포까지 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켜 74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는 국방장관인 로코솝스키 지시로 받아들여졌고, 폴란드 내에서의 로코솝스키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하지만, 폴란드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로코솝스키가 무력사용을 반대했다는 주장도 있어서 이의 책임유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어찌 되었든지간에 당대 폴란드인은 그가 소련의 명령을 받고 포즈난 무력진압을 지시했다고 여겼다. 이 포즈난 봉기 때문에 기존 공산당 지도부는 모두 사퇴하고, 공산당 내 개혁파인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정작 이 사람도 나중에 어영부영한 정책 집행으로 인민들에게 실망감을 주어 1970년 노동자 투쟁 때 책임을 지고 사실상 지도자 자리에서 실각했다.]가 집권했다. 고무우카는 로코솝스키에게 유혈사태의 책임을 물어 국방장관에서 해임했다.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는 폴란드 신정부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고무우카가 인민의 지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과의 동맹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고무우카 정권을 승인했다.[* 몇 달 후인 [[헝가리 혁명]] 때 집권한 개혁파 공산주의자인 [[너지 임레]]는 고무우카와는 달리 소련과의 동맹을 파기하려고 했기 때문에 소련군이 침공했고, 결국 본인도 소련군에게 붙잡혀 처형된다.] 폴란드 신정부는 로코솝스키가 폴란드에 머무르겠다면 현역에 있을 때와 동일한 연금을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로코솝스키는 이를 거부하고 폴란드군에 복무하던 폴란드계 소련인들과 함께 소련으로 떠났다. 흐루쇼프는 로코솝스키에게는 폴란드 귀화 이전 소련 직위를 다시 내리며 달랬다. 이 포즈난 봉기의 유혈진압은 당시 공산당에서도 과오나 실책으로 여겨지던 것이라서 새로 집권한 고무우카로서는 소련인으로 간주되던 로코솝스키를 파면하는 것이 민심을 달랠 수 있던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로코솝스키도 본인을 계속 러시아의 앞잡이로 간주하던 폴란드에 별로 정이 없었던 듯, 파면되자 미련없이 폴란드를 떠났고 폴란드에 남겨진 재산도 소련으로 가져가지 않고 폴란드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부하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영어 위키백과 문서에는 로코솝스키가 소련으로 돌아가 흐루쇼프에게 폴란드를 침공하라고 부추겼다는 주장이 적혀 있지만, 영어 위키백과에 나온 그 출처는 failed verification이라고 적혀 있다. 그다지 신빙성 있는 출처가 아닌 듯. 게다가 다혈질로 여러 악평이 많았던 주코프와는 달리 여러 부하들이 긍정적으로 회고하는 로코솝스키의 인성을 보면 아무리 폴란드에서 소련의 앞잡이로 경멸을 받았다고 해도 바로 직전까지 자기의 지휘를 받던 폴란드인 부하들과 전쟁을 벌일 정도로 상식이 없을 것 같지는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